'2010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 발대식 소식입니다.
2010. 6.4, (금요일) 서울여성프라자 1층 회의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광주 모니터링단 사진>

 

  <사전 배포 보도자료>

서울 중구 을지로 1가 16 금세기 빌딩 12층⃒ 전화 02 2125 9973⃒팩스 02 2125 9898⃒ 언론홍보담당 윤설아(fpsls00@humanrights.go.kr)

보도자료 ⃒ 2010년 5월 31일 ⃒ 담당 : 김범조, 조사국 장애차별조사과(전화 02-2125-9854)

 

“6·2 전국 지방선거 장애인 참정권 모니터링”

-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 구성 및 발대식 개최 -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는「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이라 함)의 실효적 이행을 위해 2010. 5. ~ 10. 기간 동안 장애인 당사자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을 구성해 장애차별 관련 모니터링을 실시합니다.

현재 모니터링단의 모집 및 구성을 완료하였으며, 2010. 6. 4. 13:30부터 대방동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 발대식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8. 4. 시행되어 2년이 경과되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되는 진정사건의 추이(표 참조)를 보면 우리 사회에 이 법률이 확고히 정착되었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실정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모니터링 사업을 통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규정된 차별금지 영역 및 장애인 인권 보호와 관련된 사안들을 모니터링하게 됩니다. 생활 속 장애 차별 사례를 발굴하고, 일반 국민의 인식을 제고 하는 활동을 통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모니터링단’은 전국 4개 권역(서울, 부산, 광주, 대구)에서 △장애인의 동등한 참정권 행사 도모, △공공도서관․박물관․미술관의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주요 행사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 여부에 대한 현장 모니터링을 실시 할 예정입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대해 장애차별금지법과의 부합 여부를 모니터링 할 예정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 시범적으로 모니터링 사업을 실시한 바 있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10.부터는 그 규모를 확대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신속히 정착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한편, 장애인에 대한 참정권 보장여부를 살펴보기 위하여 이미 ‘6. 2.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으며, 세부적으로 △정당 및 후보자 웹페이지의 장애인 접근성, △선거관리위원회 선거공보의 장애인에 대한 정보전달, △선거방송의 자막․수화․화면해설 제공여부, △투표소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 등 선거과정 전반에 걸쳐 장애인 당사자가 투표현장에서 직접 선거권을 행사하면서 모니터링을 실시하게 됩니다.

  모니터링 단원은 전국 4개 권역 총 113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장애인이 61명으로 54%입니다. 이는 장애인이 직접 모니터링을 수행함으로써 장애당사자 관점에서 차별의 문제를 직접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모니터링의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 차별시정을 주관하는 독립 국가기구로서, 이번 모니터링 사업이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그 내용을 모든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고,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연도별 및 월평균 장애 관련 진정사건 접수 현황

(단위 : 건)

연 도

(년)

구 분

합계

2001년

(11~

12월)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5.28)

연도별

장애

2,465

13

20

20

54

121

113

239

695

745

516

정신장애

2,734

8

20

45

112

176

228

548

591

691

315

평균

월평균

50.5

1.8

3.3

5.4

13.8

24.8

28.4

65.6

107.2

119.7

166.2

 

■ 모니터링단 구성

 

 

 

모니터링단

(113명)

 

자문단

(7명)

 

 

 

 

 

 

 

 

 

 

 

 

 

 

 

 

 

 

 

 

 

 

 

 

 

 

 

본부 모니터링단(36명)

 

부산권

모니터링단(30명)

 

광주권

모니터링단(22명)

 

대구권

모니터링단(25명)

- 장애인비율

61%(22명)

 

- 장애인비율

67%(20명)

 

- 장애인비율

48%(10명)

 

- 장애인비율

36%(9명)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은 모니터링 자문단과 순수 현장 모니터링단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습니다.

 

■ 모니터링단 과제 및 활동

모니터링은 크게 현장 모니터링과 정책 모니터링의 나누어 실시됨

1. 정책 모니터링 과제 : 지자체 조례 모니터링

2. 현장 모니터링 전국 지정 과제(5월~10월, 월 1회)

① 장애인 참정권 모니터링(6·2 전국 동시 지방선거)

· 장애인에 대한 후보자 및 정당에 관한 정보전달(웹페이지 접근성, 점자인쇄물, 선거방송에서의 수화, 자막 제공 등)

· 투표소에서의 장애인 편의제공

② 장애인차별금지법 단계적 조항 이행 모니터링

· 국가 및 지자체가 주최하는 각종 토론회, 국제행사, 문화체육행사에 대한 장애인 편의제공 모니터링(일정 규모 이상)

· 공공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의 장애인 편의제공 모니터링

 

3. 현장 모니터링 지역 자율 과제(5월~10월, 월 1회)

→ 지역 현안 등을 고려하여 권역별 자체 선정

붙임 3.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 발대식 계획

 

 

【2010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 발대식 진행 순서】

사 회 : 박성남 (장애정책팀장) 2010. 6. 4.(금) 13:30~17:15

구 분

시 간

내 용

개 회

13:30~13:35

· 박성남 (장애정책팀장)

인 사

말 씀

13:35~13:40

․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 제1부 : 위촉식 및 퍼포먼스>

위촉식 1

13:40~13:45(5´)

․ 모니터링단 자문단 위촉식

위촉식 2

13:45~14:15(30´)

․ 권역별 모니터링단 위촉식

선언문

낭독

14:15~14:20(5‘)

· 모니터링단 선언문 낭독

- 시각, 청각, 지체, 장애 대표

퍼포먼스

14:20~14:35(15‘)

· 노래이야기

- 이지상 (성공회대학교)

휴 식

14:35-14:45(10´)

휴 식

< 제2부 : 모니터링단 교육 >

격 려

말 씀

14:45-14:50(5´)

- 심상돈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국장)

강의 1

14:50-15:30(40´)

․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장애차별 주요 결정례

- 배대섭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과장)

휴 식

15:30-15:45(15´)

휴 식

강의 2

15:45-16:15(30´)

․ 장애인 정보 접근권

- 현준호 (한국정보화진흥원 정보접근지원부)

소 통

16:15-16:40(25´)

․ 1기 모니터링단 후기 및 모니터링단 운영방향 설명

- 부산, 광주, 대구 지역 대표/ 장애정책팀장

< 제3부 : 질의 응답 >

종합

토론

16:40-17:10(30´)

질의응답

폐회

17:10-17:15(5´)

폐회

 

저작자 표시
Posted by 호제와 남주


 

김 호 근 (전북인권교육센터 활동가)


사람은 누구나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 안락함과 편안함이 있는 곳 중에 하나가 고향집일 것이다. 전주에서 3시간을 휠씬 넘어서야 도착하는 시골집에 다다르면 어릴 적에 미꾸라지 잡고 헤엄치던 냇가와 함께 주인 왔다고 짖어대는 누렁이 ‘멍멍’소리가 요란스럽다. 닫힌 대문을 열면 떨어져 나갈 듯이 꼬리를 흔드는 누렁이 머리를 한번 쓱 만지고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저 멀리서(?) 형이 한참이나 방문을 열고 거실로 엉덩이 걸음으로 힘겹고 나오고 있다. 얼른 형 얼굴 앞에 최대한 내 얼굴을 갖다 대고 흐느적 뻗는 형의 손을 잡고 ‘형, 나 왔어’ 하면 어눌한 말투로 ‘응, 어서 와’ 하며 반긴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반가운 몸짓과 표정으로 반긴다. 나를 이토록 기쁘게 반기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에 또 있을까! 가득찬 행복감이 고향집의 편안함과 더해져 구름을 걷는 기분이 된다.

1. ‘장애인’이 된 형

형은 1급 뇌병변 장애인이다. 8년 전에 몸이 이상해 이곳 저곳 병원을 다니다가 아주 큰 대학병원에 가서야 진단을 받아 확인한 것이 ‘소뇌위축증’이라는 희귀병이었다. 몸의 평형감각과 감각기관을 담당하는 소뇌의 기능이 서서히 사라지는 그러다가 몸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어 죽고 마는 발병원인도 치료방법도 모르는 그야말로 ‘희귀’병이었다.

하지만 나는 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집은 지병 때문에 평생을 앓아누워계시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시장에서 행상을 하며 생계를 이끌었고 온 식구들은 어머니를 대신에 아버지 병간호와 온갖 집안일을 하나씩 맡으며 집안을 이끌어 갔다. 하지만 장남인 형은 장남으로서 가지는 시골의 전통적인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도 동네 불량배 짓에 나중에 학교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서는 어려운 집안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돈이 생길 때마다 가져다가 없애버리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식구들이 이제야 좀 살 길을 찾아 여유를 하나씩 찾아갈 때 형은 ‘몹쓸’ 병까지 몸에 단 장애인이 되어 집에 나타났다. 거기다가 여기저기 은행빚에 사채까지 주렁주렁 달고 온통 집안을 먹장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오랫동안 아니 거의 모든 유년기와 학창시절과 청년기를 병든 아버지를 간호해 본 식구들은 또 다시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는 ‘악몽’이 너무너무 싫었고 더우기 그 당사자가 집안 일은 한번도 거들떠 보지 않은 그 잘난 ‘장남’이라는 사실은 도저히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 이상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이 불가능한 형은 이혼해야 했고 어린 두 조카들과도 눈물어린 생이별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은근히 미안했던 형은 고생하는 어머니와 집안 식구들에게 누가 될까봐 병든 장애인의 몸으로 서울로 떠났다. 환우회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으로 간 것이다.

그 뒤로 몸이 더 안 좋아진 형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형은 장애인이 된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긴 싸움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다. 지난 날의 모든 생을 깊게 성찰한 어엿한 ‘장남’ 으로 돌아온 것이다.

2. ‘형’이 된 장애인

나는 지금 전주에 살고 있고 형은 고향집에서 팔순이 다 되어가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어머니는 새벽에 시장에 일 나갔다가 저녁에서야 들어오시는 데 그 사이에 형은 혼자서 식사를 비롯한 온갖 일상을 활동보조인과 함께 잘도 해치운다. 또 집안에 급한 일이 생기면 떨어져 사는 식구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적절한 조치도 취하면서 멀리 사는 형제들에게 나이드신 홀어머니 걱정을 꽉 붙들어 매게 하는 ‘효자’ 장남이 되었다. 아마 형이 장애인이 안 되었더라면 누가 어머니 곁에 있었을 런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올해 설에는 집에 갔을 때 형이 지역신문에 난 자신의 기사를 보여주었다.

 

"몸은 아파도 세상은 살만한 가치 있어
하나님은 병 주신 대신 긍정적 사고와 웃음 선물"

 
소뇌위축 환자 김00씨


소뇌 세포가 하나하나 죽을 때마다 몸도 죽어간다. 6개월 전까지 만해도 사물을 구별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형태만 겨우 보일 뿐 시력을 거의 상실했다.


1주일에 3차례나 볼 정도로 좋아했던 영화. 이젠 보지 못한다.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기 좋아했던 일도 지금은 추억으로만 꼭꼭 간직할 뿐이다. 김00(읍 해리)씨. 그가 앓고 있는 병은 소뇌위축이라는 희귀질환이다. 소뇌 세포가 죽어갈 뿐 재생하지 못하는 병이다. 병 진척도 빨라 2년 사이에 시력도 거의 상실했고 말도 어눌해졌다. 몸도 혼자 걷기 힘들 정도로 중심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것이 있다. 웃음이다. 긍정적인 사고와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있다.

하나님은 병을 준 대신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줬다고 말하는 그는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산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남과 더불어 산다는 지혜를 얻지 못했을 것이며 삶에 감사하는 마음도 갖지 못했을 것이란다.30대 초반에 이 병이 찾아왔을 때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유통분야에 종사했던 그는 능력 있는 직장인으로, 앞날이 밝은 촉망 받는 청년이었다.그러나 지금의 그는 과거를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일 뿐 지금의 내가 더 중요하고 지금의 삶을 더 소중히 받아들인다. 그래서 일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너무너무 많다는 것을 항상 느낀다.휠체어에 의존하며 남의 손에 기대야만이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그이지만 한국소뇌위축 환우들의 모임 회장을 맡아 동분서주하다. 얼마 전에도 휠체어에 의존한 채 홀로 서울을 다녀왔다. 서울에 있는 모 종합병원에서 3년간 희귀병환자들을 무료진료 해준다는 협약식을 체결하고 온 것이다. 그는 장애인용 컴퓨터를 이용해 온라인상으로 회원들과 정보를 교환하며 모임을 관리한다. 최근 들어서 신체의 기능이 급속도록 떨어지자 지인의 도움을 받으며 글을 올리고 있다. 

온라인상뿐 아니라 1년에 1∼2회 정도 세미나나 토론회 등을 기획해 서울에서 행사를 여는 일도 그의 몫이다. 지난해에는 회원들을 모아 제주도 여행을 감행하기도 했다.며칠 전 그는 몹시 앓았다. 세포가 죽어가고 있다는 증상이다.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진통이 왔고 몸에도 통증이 밀려오면서 마비 증상이 왔다. 그 증상을 겪은 후에는 여지 없이 몸에 변화가 온다. 그래도 그는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정신력으로 버텨낸다.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삶은 스스로 꾸려나가야 한다는 소신 때문에 웬만한 아픔은 혼자 견뎌낸다. 다시 건강해진다면 홀로 된 노인들을 모시고 살고 싶다는 그. 새해에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은 결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얼마든지 세상을 껴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기 때문이다.

더보기

Posted by 호제와 남주